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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편’ 언론만으로는 세상을 못 바꾼다.

Written by leejeonghwan

March 16, 2022

당신은 당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치명적인 공격이 될 수 있는 기사를 쓸 수 있는가?
당신은 절대 당선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후보에게 유리한 사실을 기사로 내보낼 수 있는가?

이 질문에서 자유로운 기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싸우지만, 그 가치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나에게 옳은 것이 당신에게 옳지 않을 수 있고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 언론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들의 주장을 소리 높여 외치라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사실과 맥락을 정확하게 드러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는 게 기자의 일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선수로 뛰는 언론.
 
우리는 알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어느 언론이 운동장에서 선수로 뛰었는지를. 그리고 누가 저널리즘의 영혼을 내다 팔면서 여론을 흔들었는지를.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논의가 지지부진하던 무렵, 동아일보 기자 이기홍은 <이기홍 칼럼/단일화 막차 놓쳐 국민 배신할 건가>(2월 4일) 칼럼에서 “혼자서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단일화를 외면한다면 도박이나 마찬가지”라며 “다수 국민의 간절한 열망, 대한민국의 미래를 베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기홍 기자는 야권의 단일화 의지 부족을 질타하며 “단일화는 의무이며 당위”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기자 홍영림은 <야권, 연대 없이 이길 수 있나… 1987·2017년에 답이 있다>(2월 3일) 칼럼에서 “야권이 연대하지 않을 경우 승부는 안갯속으로 빠져든다”며 “단일화 또는 공동 정부 구성 등 논의를 빨리 끝내”라고 촉구했다.

우리는 이 언론사들이 어떻게 윤석열 후보의 고발 사주 의혹을 뭉개고 프레임을 뒤집었는지 잘 알고 있다. 김건희씨를 둘러싼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주가조작보다 더 심각한 것은 검찰 수사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았거나 여기에 윤석열 검사의 영향력이 개입됐을 의혹이다. 그러나 언론은 이를 너무 복잡해서 알 수 없는 사건으로 만들어 버렸다. 윤석열 후보의 구둣발이 논란이 되자 이재명 후보의 담뱃불 사진이 튀어나왔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페이스북 일곱 글자를 시작으로 젠더 갈등을 끌어올리고 증오와 적대의 정치를 극대화하는 데 언론이 확성기 역할을 했다. 폭로와 물타기, 프레임 전환이 반복되면서 유권자들은 둔감해졌고 누가 ‘대장동 사건’ 몸통이냐를 따지는 사이에 선거가 끝났다.

반대편도 크게 나을 건 없었다. TBS 라디오 진행자 김어준은 아예 이재명 후보를 공개 지지하고 나섰다. 김어준씨는 지난해 10월 유튜브채널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이재명은 우리 사회의 플랫폼이 될 자격이 있다”라며 “지금부터는 당신들이 좀 도와줘야 한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김어준씨가 ‘접대부 쥴리’ 논란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생태탕 시즌 2″가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선거일 직전엔 김용민 평화나무 이사장이 “윤석열이 김건희로부터 성상납을 받은 점이 강하게 의심된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언론이 무너진 자리에 남는 건 갈등과 증오, 집단 이기주의.

누군가는 김혜경씨 법인카드 유용 논란이 김건희씨 주가조작 의혹보다 더 큰 이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 반대였을 수도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조사에 따르면, 2월 10일에서 15일까지 종합편성채널 4사 보도에서는 김혜경 논란이 172분을 차지한 반면 김건희 의혹은 17분에 그쳤다. 민주당 진영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이야기하는 것은 저쪽은 발가벗고 뛰는데 이쪽은 끌려가기만 한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발가벗고 뛴다고 해서 그들이 뜻하는 대로 여론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발가벗고 뛰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언론에 대한 불신과 정치 혐오가 뿌리를 내린다. 생태탕이나 쥴리 논란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언론이 의도를 드러내고 팬덤을 끌어모으면,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진영 바깥으로 밀어내게 된다. 이번 대선에서 경험했듯 언론이 무너지고 의제와 토론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갈등과 증오, 집단 이기주의뿐이다.
 
뉴스타파가 2019년 7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 윤석열 후보자의 거짓말을 폭로했을 때를 돌아보자.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몰려가 “뉴스타파와 자유한국당이 야합했다”라면서 거세게 비난했다. 당시 해당 보도 여파로 수천 명의 후원회원이 떨어져 나갔지만, 진영을 떠나 ‘뉴스타파는 믿을 수 있다’는 사회적 자산을 얻었다. 그때 뉴스타파에 비난을 쏟아낸 많은 사람이 이번 대선을 치르면서 그래도 뉴스타파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한겨레가 윤석열 비판 기사를 1면에 게재하려고 준비했다가 철회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한겨레는 알림 기사를 내고 “(기사에 실린 발언이) 전언과 추정으로 읽혀 추가 확인 없이 청탁의 증거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 판단이 옳았는지와 별개로 기사 완결성을 위해 비난을 무릅쓴 한겨레 데스크의 고뇌가 읽히는 대목이다. 한겨레가 윤석열 후보자 당선을 위해 기사를 킬했다고 생각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언론이 제 역할을 했다면 우리는 다른 결과를 맞게 됐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쥴리’의 실체를 잘 몰라서가 아니고 형수 욕설의 맥락을 잘못 이해해서도 아니다.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기 원하느냐를 두고 치열한 토론이 이뤄져야 할 시기에 이재명과 윤석열을 내세워 온 국민이 전쟁을 치렀다. 상대방의 무능과 위선 외에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저놈들이 더 나쁜 놈들’이라는 프레임 외에 정작 무엇을 하겠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최악의 대선. 언론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것은 언론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의를 부르짖는 ‘우리 편’ 언론이 늘어난다고 해서 빼앗긴 봄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욕을 먹더라도 해야 할 이야기를 하는 언론이 늘어나고 우리 사회가 그 불편한 진실을 감내할 때 비로소 공론장이 작동하기 시작할 거라고 믿는다. 전쟁 같은 대선을 치른 지금,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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