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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란드 비야손과 안나 네트렙코.

Written by leejeonghwan

January 30, 2011

마포역 뒷 골목에 허름한 클래식 음악 감상실이 있다. 이름이 뭐였더라. 안주는 과자 부스러기를 적당히 덜어다 먹으면 되고 맥주는 한 병에 5천원씩. 통닭이나 피자를 사오거나 배달시켜 먹어도 되고 주인이 없을 때가 많기 때문에 마시는 만큼 돈을 놓고 가면 된다. 카드 결제하는 방법도 적혀 있어서 알아서 긁고 가면 된다. 그곳에서 롤란드 비야손(Rolando Villazon)과 안나 네트렙코(Anna Netrebko)의 라트라비아타 공연 DVD를 처음 봤다.


비야손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죽고 난 뒤 유일하게 그를 대신할 만한 테너로 꼽히는 성악가다. 네트렙코는 실력 뿐만 아니라 영화배우 못지않은 아찔한 미모로 주목 받는 소프라노다. 파바로티를 비롯해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 등 이른바 쓰리 테너의 시대가 가고 잘 생기고 파워풀한 젊은 테너들이 그들의 자리를 넘보기 시작했다. 소프라노들도 이제 S라인 몸매에 매혹적인 눈빛, 타오르는 붉은 입술이 필수 조건이 됐다.

풍부한 성량을 내려면 어느 정도 체격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상식이지만 파바로티는 엄청난 몸무게 덕분에 무릎 질환을 앓아왔고 폐병에 걸려 죽어가는 라보엠의 미미를 연기하던 한 소프라노는 지나치게 뚱뚱한 몸매 때문에 조롱을 사기도 했다. 매혹적인 집시 카르멘을 연기하려면 어느 정도 날렵한 몸매가 필수적이기도 하다. 네트렙코나 안젤라 게오르규 같은 얼짱·몸짱 소프라노가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때 봤던 건 2005년 찰츠부르크 페스티발 공연이었는데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무대 구성과 화려하고 역동적인 춤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비야손과 네트렙코의 노래가 훌륭했기 때문이겠지만 오페라도 이제 비주얼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두 사람의 연기가 너무 애틋하고 그럴 듯 했기 때문에 한때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떠돌기도 했지만 네트렙코는 2008년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물론 두 사람의 인기는 외모 뿐만 아니라 그만큼 실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조합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전성기의 플라시도 도밍고나 마리아 칼라스도 이 정도로 정말 연인 같으면서도 서로에게 뒤처지지 않는 완벽한 커플을 이루지 못했다. 물론 성악 자체만 놓고 보면 파바로티에 한참 못 미친다는 평가도 많고 네트렙코 역시 전설적인 칼라스에 비교하기에는 한참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지만.

 

특히 이 라트라비아타 공연은 무대장치를 과감히 배제하고 미니멀리즘적 무대 소품과 블루 톤의 조명으로 등장인물의 움직임을 부각시킨다. 1800년대의 오페라를 이처럼 현대적으로 해석해 놓으니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카메라가 무대 아래쪽에 머물지 않고 클로즈업해서 표정의 변화를 예리하게 잡아낸다. DVD 시대의 오페라는 영화처럼 배우들의 표정과 손짓 발짓 하나하나에 감정을 실어내야 하는 종합 예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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